2020년 3월 23일 월요일

계룡산의 정신병자들


길을 잃거나 해서 예정하지 않았던 장소에 가 본 적이 적지 않게 있다.

예를 들면, 정릉의 삼곡사 굿당 같은 곳이다. 길을 잃고 유턴을 하기 위해 외길을 들어가다 보니 만나게 된 서리얼 한 곳이었다. 굳이 서리얼이라는 영어 단어를 쓰는 이유는 그 단어의 뜻 그대로 아주 이상하고 비현실적이고 꿈같은 광경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관령 국사성황당 같은 곳도 있다. 예전 국도를 타고 강릉을 가는 길에 무슨 관광지인가 하고 들어가 보았던 곳이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네모난 연못과 큰 나무들이 기이한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평창동에서 북한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여럿 있다. 겨울에 그중 한 등산로를 오르다 바위에 새긴 기괴한 붉은 인각을 보고 들어간 곳 또한 그런 장소이다. 두 동의 낡고 작은 시멘트 집이 있었고 인기척이 없었는데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한 짝의 낡은 겨울 털신이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건물 뒤쪽으로는 큰 바위가 있고 그 앞에 기도를 하는 촛대가 놓여 있었다.

이곳들은 모두 무속에 관련된 곳들이다. 내가 이런 곳들을 우연히 가보게 된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 것은 밤에 잠을 깨고 다시 잠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 앞서 나는 왜 요즘 수년 간 계룡산 주변을 맴돌고 있는가를 생각하였다. 산바람이 청량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곳이 전국에 무속인들과 토착신앙인들이 모여들 만큼 영적인 기운이 있는 곳이기 때문인가?

막상 계룡산에서 어떤 기감이나 신령함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서 기도를 한 후 돌아오면 어떤 조화造化를 느꼈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다. 이것은 계룡산의 영검함 때문은 아니고 억지로 관련 없는 사실들을 서로 결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계룡산을 생각하게 된 것은, 오늘 계룡산을 등산하였다가 만나게 된 수많은 정신병자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계룡산을 등산하다 보면 멀쩡하게 등산복을 차려 입은 정신병자들을 여럿 만나게 된다. 남자 건, 여자 건 할 것 없이 열에 서너 명은 이런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정신병의 특징은 산에 오면서 냄새나는 향수, 화장품으로 몸에 멱을 감고 나온다는 데 있다. 이렇게 역겨운 인공향을 몸에 뿌리면, 본인과 주변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그렇게 할 것인데, 정신병의 한 유형이 이런 잘못된 믿음을 갖는 것이다.

산에 와서 맑은 산바람을 느끼고, 나날이 생기를 띄는 잎새들을 알아차리고, 작게 올라오는 몽우리들을 쳐다보며 신비하고 아름다운 생의 약동을 느끼려는 순간 폐부까지 순식간에 들어오는 인체에 유해하고 불쾌한 인공향을 느끼게 되고 산에까지 올라온 수많은 정신병자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정작 본인들은 아무런 자각이 없을 것인데 자각을 느낀다면 이미 정신병은 아닌 것이다.
인공향에 취한 속세의 속인들이나, 산에 와서 굿을 하고 기도를 해야 한다는 무속인들이나 공히 일종의 정신 병적인 상태에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정신과 육신의 어느 한쪽이 결핍될 때, 영육이 불균형을 느낄 때 사람은 정신병자가 된다. 산에 와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기가 버린 쓰레기는 자기가 다 들고 와야 비로소 정상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