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9일 토요일

안드로메다 스트레인과 빌 게이츠


코로나 사태를 지내오다가, 갑자기 오래전 읽으려고 노력했던 영문 소설이 생각 났다. <Andromeda Strain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이라는 소설인데, 우리에게는 쥬라기 공원의 원작자로 알려진 <Michael Crichton 마이클 클라이튼>이라는 작가가 1970년에 쓴 SF 단편소설이다.

나는 1996년 무렵 샌프란시스코에서 잠깐 있을 때 어느 헌책방에서 두꺼운 책을 한권 샀는데, <The Great Train Robbery 대 열차 강도>등 다른 단편들과 같이 묶여 있는 두꺼운 단편소설 모음집이 바로 그 책이었다.

나는 영문으로 된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의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보려고 부단 노력하였으나, 변변치 않은 영어 실력 때문에 결국 서너 페이지를 보고 포기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제목은 기억에 잘 남아있다.

지금에 와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대강의 줄거리도 알 수 있었고, 그 소설을 영화화한 영상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설 내용 자체는 SF매니아들이 아니라면 재미있게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시사점이 있다면, 핵무기나 우주개발이 큰 관심이었던 1970년대에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던 생물학적 위기를 상정하였다는 점이다.

빌 게이츠는 오 년 전 Ted 강연에서 세계적 재앙을 부를 가장 위험한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바이러스라고 말했다. 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과 생물학적 위기를 경고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에 대응하는 백신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빌 게이츠의 백신 개발과 관련해 그 순수성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나도 빌 게이츠의 행보에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미래를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어가는 것은 그보다 쉽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조직에게 있어서 그렇다.

북한의 권력자인 김정은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핵전쟁을 일으켜 역사책의 내용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보다 더 큰 권력자일지 모를 빌 게이츠도 바이러스로 큰 돈을 버는 거대한 음모의 큰 그림을 그리고 5년 전부터 연기를 하면서 바람을 잡고, 드디어 지금 거사를 실행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음모론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돈과 권력에 한번 맛을 들인 사람은 그것을 더 확대하기 위해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세계 제1의 부자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내친 김에 음모론을 더 나가자면, 빌 게이츠는 윈도우 운영체제를 팔면서 백도어를 만들고 전 지구적 스케일로 정보를 취득했을지도 모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독단적인 행위가 아니고 미국의 정보기관의 거대 프로젝트와 연계되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

요즘이야 해저 인터넷선을 정보기관이 바로 연결하여 정보를 탐색한다는 에셜론(ECHELON) 프로젝트 같은 것이 있어 그 역할이 중지되었을 수도 있다.

빌 게이츠가 소유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저(Azure)라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많이 기업과 조직들이 그것을 사용한다. 전 세계의 정보가 저절로 모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저 기반에서 미국방부의 컴퓨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화 12조 규모의 제다이(JEDI) 계약을 따냈다. 애저에는 인공지능 기반의 서비스들이 계속 추가되어가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보았던 인간과 싸우는 인공지능기반의 네트워크인 스카이넷의 시발점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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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3일 월요일

계룡산의 정신병자들


길을 잃거나 해서 예정하지 않았던 장소에 가 본 적이 적지 않게 있다.

예를 들면, 정릉의 삼곡사 굿당 같은 곳이다. 길을 잃고 유턴을 하기 위해 외길을 들어가다 보니 만나게 된 서리얼 한 곳이었다. 굳이 서리얼이라는 영어 단어를 쓰는 이유는 그 단어의 뜻 그대로 아주 이상하고 비현실적이고 꿈같은 광경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관령 국사성황당 같은 곳도 있다. 예전 국도를 타고 강릉을 가는 길에 무슨 관광지인가 하고 들어가 보았던 곳이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네모난 연못과 큰 나무들이 기이한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평창동에서 북한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여럿 있다. 겨울에 그중 한 등산로를 오르다 바위에 새긴 기괴한 붉은 인각을 보고 들어간 곳 또한 그런 장소이다. 두 동의 낡고 작은 시멘트 집이 있었고 인기척이 없었는데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한 짝의 낡은 겨울 털신이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건물 뒤쪽으로는 큰 바위가 있고 그 앞에 기도를 하는 촛대가 놓여 있었다.

이곳들은 모두 무속에 관련된 곳들이다. 내가 이런 곳들을 우연히 가보게 된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 것은 밤에 잠을 깨고 다시 잠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 앞서 나는 왜 요즘 수년 간 계룡산 주변을 맴돌고 있는가를 생각하였다. 산바람이 청량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곳이 전국에 무속인들과 토착신앙인들이 모여들 만큼 영적인 기운이 있는 곳이기 때문인가?

막상 계룡산에서 어떤 기감이나 신령함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서 기도를 한 후 돌아오면 어떤 조화造化를 느꼈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다. 이것은 계룡산의 영검함 때문은 아니고 억지로 관련 없는 사실들을 서로 결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계룡산을 생각하게 된 것은, 오늘 계룡산을 등산하였다가 만나게 된 수많은 정신병자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계룡산을 등산하다 보면 멀쩡하게 등산복을 차려 입은 정신병자들을 여럿 만나게 된다. 남자 건, 여자 건 할 것 없이 열에 서너 명은 이런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정신병의 특징은 산에 오면서 냄새나는 향수, 화장품으로 몸에 멱을 감고 나온다는 데 있다. 이렇게 역겨운 인공향을 몸에 뿌리면, 본인과 주변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그렇게 할 것인데, 정신병의 한 유형이 이런 잘못된 믿음을 갖는 것이다.

산에 와서 맑은 산바람을 느끼고, 나날이 생기를 띄는 잎새들을 알아차리고, 작게 올라오는 몽우리들을 쳐다보며 신비하고 아름다운 생의 약동을 느끼려는 순간 폐부까지 순식간에 들어오는 인체에 유해하고 불쾌한 인공향을 느끼게 되고 산에까지 올라온 수많은 정신병자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정작 본인들은 아무런 자각이 없을 것인데 자각을 느낀다면 이미 정신병은 아닌 것이다.
인공향에 취한 속세의 속인들이나, 산에 와서 굿을 하고 기도를 해야 한다는 무속인들이나 공히 일종의 정신 병적인 상태에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정신과 육신의 어느 한쪽이 결핍될 때, 영육이 불균형을 느낄 때 사람은 정신병자가 된다. 산에 와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기가 버린 쓰레기는 자기가 다 들고 와야 비로소 정상인이라 할 수 있다.

2020년 1월 27일 월요일

이세야いせや와 카미야바神谷バー

망각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느낀다. 불과 10여년 전 일도 기억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회상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연히 떠오른 상념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기억을 복원하여 메모를 남긴다.
いせや
일본 주오센역 중에 기치죠지가 있다. 성북동에 있고 법정스님이 계셨던 길상사吉祥寺와 같은 한자다. 길상은 운수가 좋을 조짐, 경사가 날 조짐이라는 아주 좋은 뜻이다.
불교의 용어로 길상은 망갈라이고 망은 비참함 갈라는 그 상태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고 한다. 비참하고 한심한 상태에서 벗어나 평온과 축복의 상태가 지속된다는 뜻이라 한다
어찌 되었건, 기치죠지에는 이노가시라 공원이 있다. 공원 입구에는 이세야いせや公園店라는 야키토리 집이 있다.삿포로 병맥주에 야키토리를시키면 그만인데, 가져다 주는 종업원은 흰색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유니폼은 때에 찌들어 있었다.
사람이 많아 분주한 휴일이라 할지라도, 공원 앞에 흐르는 묘한 한적함에 한없이 느긋해지는 그 심정을 잊을 수 없다.
神谷バ
카미야바는 아사쿠사에 있는 센소지를 구경하며 나오면서 들리면 좋다. 생맥주 이외에 덴키브란이라는 독한 술을 파는데, 우리나라 캡틴큐 보다는 나은 맛이다.
한잔 들이키고, 나와서 정처없이 걷다보면 갓파바시라는 주방 용품 파는 거리를 지나기도 하였다. 식당에서 쓰이는 큰 냄비나 프라이팬이나 칼 등을 구경하며 한참을 지나갔다.
그리고 도서관인지 문화원인지 지금은 어디인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현대식 건물에 들어가 소변을 보고 나왔었을 때, 해가 지던 저녁거리에 서게 된 이방인의 묘하게 쓸쓸하던 감정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