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된 일이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블로거를 찾아 전라도의 모처를 운전해서 방문했다.
그 블로거는 마찬가지로 일면식도 없던 나를 따뜻하게 대접해 주었다. 나는 그의 응대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서울로 돌아가면 그에게 원두커피라도 보내서 감사의 정을 표하고 싶었다.
그와 헤어진 후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나는 지리산을 경유해서 서울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리산의 어지러운 고개길을 이리저리 운전하고 함양의 이정표를 보고 어찌하여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대전-통영 고속도로였다. 지리산의 상쾌한 공기를 잠시 마셨지만, 장시간 운전과 인생사의 여러 고민으로 정신이 피로한 상태였고, 그때 마침 그 긴 터널을 지나게 되었다.
터널은 운전자의 주의를 상기시킬 목적이었는지 알록달록한 경광등을 일정 거리마다 반복적으로 켜고 듣기 싫은 경고음을 내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운전하던 나는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과 숨이 막히는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손과 몸이 떨리고, 손바닥에 땀이 많이 나서 운전대를 잡기 어려웠다.
결정적으로 발에 힘이 빠져 엑셀레이터는 물론 브레이크를 잡기가 어렵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러다 죽는다고 생각하고 모골이 송연하고 아연실색하여 어찌하여 터널을 빠져나오고, 운 좋게 다음 출구로 빠져나오니 기사들을 상대로 운영하는 작은 시골 식당이 있었다.
주인에게 청하여 식당의 한켠에 누웠다. 이것이 바로 공황장애구나. 믿을 수 없는 느낌이었고 그것이 만약 공황장애라면 내게 일어난 최초의 발작이었다.
그 후 10여 년간 운전 중에 정도는 덜하지만 셀 수 없는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고, 나중에는 고속도로 운전을 기피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안경도 바꿔보고 운전 중에 심호흡도 하고 이런저런 노력을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러던 중 신기하게도 공황장애가 일어나는 장소를 특정할 수 있었는데 바로 다리와 터널이었다. 놀랍게도 다리와 터널을 지나는 순간 항상 현기증이 나는 것이었다.
궁금한 것은 다리였다. 터널이라면 명백히 터널을 지나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데 반해, 다리는 고가다리나 해도 일반 도로와 구분이 되지 않는 곳도 많았기 때문이다.
다리 위를 지나면 거의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어지러운 느낌은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30년을 운전하며 60만 킬로미터를 경과했다. 한때는 지구의 둘레가 4만 킬로가 아니라 40만 킬로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가 지구를 여러 번 돌 만큼 많이 운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최초의 공황장애를 겪고 난 후에도 도처를 쏘다니며 무던히도 계속 운전한 끝에 어느 날 나는 운전 중에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알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알면 싱거운 비밀이었다.
그것은 바로 차선이다. 일반 도로는 차선이 점선으로 표시되는데 반해 다리와 터널의 차선은 실선으로 표시된다. 거기서 추월하지 말라는 의미다.
점선과 실선의 차이가 왜 공황장애를 유발하는가?
도로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운전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바로 도로에 그려진 점선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그려진 점선들을 멀리서 보더라도 운전자는 도로의 만곡, 원근, 고저를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실선은 그 같은 정보를 운전자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운전자는 점선으로 되어있는 일반 도로를 운전하면서 점선을 통해 다양한 시각적 정보를 취득하다가 다리와 터널에 이르러 그 점선들이 사라지고 실선을 보게 되는 순간 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잃게 되는 것이다.
운전 중에 겪게 되는 이 같은 순간적인 정보 상실은 인간의 인지 능력에 공황 상태를 초래한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터널과 다리에서 겪게 되는 운전 중의 공황장애의 원인이다.
외국의 사진을 보면 터널에도 차선은 점선으로 표시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한국은 유독 다리와 터널을 예외 없이 실선으로 차선을 그린다.
도로에 차선을 그리거나 그렇게 하도록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도로가 초래하는 공황장애에 대해 오래도록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30년 동안 지구의 25바퀴를 돌만큼 오래 운전한 내 말을 믿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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