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그렇다. 유튜브를 보면서 도를 닦는다.
도를 닦는다 함은 대개 경을 보고,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해서 존재와 우주의 진리에 대해 궁구하는 일을 말한다.
도를 닦으려면, 우선 비전의 좋은 책을 봐야 한다. 무협지에 나오는 비급을 본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요즘은 유튜브가 책을 대신한다. 비인부전의 편협한 세계도 아니고, 이심전심의 두리뭉실한 세계도 아니다.
유튜브는 광고만 좀 볼 요량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있고 비주얼 하게 확실히 보여주는 그런 세계다.
유튜브를 보면 전세계의 기인이사들이 나와서 그들의 신묘불측한 기담괴설을 풀어놓는다.
요즘 내가 보는 것은 양자역학이나 바이오센트리즘과 같은 것들인데, 뭘 알아서 본다기 보다 동양철학과유사한 면이 있어 보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실 공자나 부처 같은 사람은 지금의 고등학생보다도 세상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들이 죽고난 이후 축적된 과학지식이란 것은 실로 놀라만큼 거대한 것이지만 그 대부분을 요즘 고등학생들은 배운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동양철학이란 것이 갈수록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고, 배우려는 사람도 줄어드는 것이리라. 하기야 따지고 보면 남종화니 북종화니 따지며 다소 인기가 있었던 동양화에 대한 관심이 요즘은 거의 없어진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각설하고, 맞다. 불멸 후 수천년이 지나 투쟁견고한 말세에도 신심을 내어 도를 닦는 사람들이 있다. 유튜브를 보면서 말이다.
2018년 11월 23일 금요일
2018년 11월 10일 토요일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카를로 로벨리
실재는 보이는 것과 다른 것이다, 라고 번역할 만 하다.
이 책은 물리나 수학을 모르는 나 같은 범인도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게 쓰여진 좋은 책이다.
시사점은 많지만, 일단 우리가 인식하는 시공간은 중력장의 희미한 그림자라는 문단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일반 상식으로 자기장이나 전기장 정도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 장 Field라는 것이 실재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개념이란 것을 알게 해주었다.
내 학창 시절 물리시간에는 세상의 최소 구성요소는 양성자나 전자로 이루워진 원자 모델이란 것을 배웠던 생각이 난다.
그것들은 지금의 물리학의 지식과는 많이 다른 것이다.
나는 이책을 두 번 읽게 되었는데, 책을 두번 읽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도반들의 일독을 권한다.
시사점은 많지만, 일단 우리가 인식하는 시공간은 중력장의 희미한 그림자라는 문단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일반 상식으로 자기장이나 전기장 정도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 장 Field라는 것이 실재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개념이란 것을 알게 해주었다.
내 학창 시절 물리시간에는 세상의 최소 구성요소는 양성자나 전자로 이루워진 원자 모델이란 것을 배웠던 생각이 난다.
그것들은 지금의 물리학의 지식과는 많이 다른 것이다.
나는 이책을 두 번 읽게 되었는데, 책을 두번 읽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도반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기론(理氣論)과 장(Field)
물론 나같은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기론을 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평범한 상식인로 이기론 같은 것처럼 공허한 논설은 없다고 생각한다.
안다고 먼지하나 생겨나지 않은 무의미한 논설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철학에서 이나 기는 중요한 개념이고, 통상 이는 법칙, 기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란 비유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라는, 책을 읽고 나니, 아마 선현들이 말한 기라는 것인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Field)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리학에 따르면 리와 기는 다음처럼 설명되어 있다.
리는 소당연(所當然)·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설명은 아니다. 칸트식의 분석명제, 종합명제가 있다고 할 때 이런 설명은 분석명제에 속하는 것으로 세상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없다. 그냥 한국말로 이치 법칙이라 해도 무방할 듯 하다.
기는 모든 구체적 사물의 존재와 생성과 관련된 질료(質料)·형질(形質)이라는 뜻을 나타내고따라서 모든 사물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필요한 ‘현상적 요소’라고 설명된다.
취산굴신(聚散屈伸)하고 기비기약(其飛其躍)한다는 것이다.
이제껏 나는 기를 비유적으로 세상을 구성하는 어떤 에너지나 그 흐름으로 생각하고는 했다. 하지만 최근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고, 장(Field)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알게되자 기가 바로 장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의 어원이 아지랑이라고 하는 것은 본 적이 있다. 보이지 않지만 공간에 존재한는 기야 말로 현대 물리학의 장과 유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기론에도 뭔가 심오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평범한 상식인로 이기론 같은 것처럼 공허한 논설은 없다고 생각한다.
안다고 먼지하나 생겨나지 않은 무의미한 논설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철학에서 이나 기는 중요한 개념이고, 통상 이는 법칙, 기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란 비유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라는, 책을 읽고 나니, 아마 선현들이 말한 기라는 것인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Field)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리학에 따르면 리와 기는 다음처럼 설명되어 있다.
리는 소당연(所當然)·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설명은 아니다. 칸트식의 분석명제, 종합명제가 있다고 할 때 이런 설명은 분석명제에 속하는 것으로 세상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없다. 그냥 한국말로 이치 법칙이라 해도 무방할 듯 하다.
기는 모든 구체적 사물의 존재와 생성과 관련된 질료(質料)·형질(形質)이라는 뜻을 나타내고따라서 모든 사물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필요한 ‘현상적 요소’라고 설명된다.
취산굴신(聚散屈伸)하고 기비기약(其飛其躍)한다는 것이다.
이제껏 나는 기를 비유적으로 세상을 구성하는 어떤 에너지나 그 흐름으로 생각하고는 했다. 하지만 최근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고, 장(Field)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알게되자 기가 바로 장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의 어원이 아지랑이라고 하는 것은 본 적이 있다. 보이지 않지만 공간에 존재한는 기야 말로 현대 물리학의 장과 유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기론에도 뭔가 심오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금강경
금강경을 읽고,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것은 실재가 아니다라는 책을 보고, 같은 사람이 쓴 모든 순간의 물리학을 보고,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과 반야심경이라는 강의를 봤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은 대부분 가난했는데, 학생들이 집에서 책을 한권씩 가져와 교실 옆편 선반에 가져다두고 학급문고라고 불렀다.
그 중 한권 내가 읽은 책이 반야심경이었는데, 그 책의 앞 부분은 반야심경이고 뒷부분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부부간 궁합에 좋은 시간은 별빚이 흐르는 기압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내용이 붙어 있는 그런 책이었다.
나는 그 반야심경을 오후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강제 학습시간에 보고 또 보고 해서 외울 수가 있게 되었는데, 외우다 보니 그 뜻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금강경은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다시 금강경을 읽으니 대학교 때 불경강독이라는 과목을 수강했었고, 시험으로 금강경을 암기해 쓰는 시험을 봤고, 그것을 강의한 분이 송찬우라는 분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했고, 검색을 해보고 그분이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에 다시 금강경을 봤다. 덕분에 red pine이라는 서구인 동양학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금강경의 주된 논지는 나같은 범인이 이해하기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같은 생각은 금강경의 사구게에 잘 나타나 있다.
첫번째 사구게 - 제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하니라.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으로 본다면, 곧 여래를 보느니라.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은 대부분 가난했는데, 학생들이 집에서 책을 한권씩 가져와 교실 옆편 선반에 가져다두고 학급문고라고 불렀다.
그 중 한권 내가 읽은 책이 반야심경이었는데, 그 책의 앞 부분은 반야심경이고 뒷부분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부부간 궁합에 좋은 시간은 별빚이 흐르는 기압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내용이 붙어 있는 그런 책이었다.
나는 그 반야심경을 오후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강제 학습시간에 보고 또 보고 해서 외울 수가 있게 되었는데, 외우다 보니 그 뜻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금강경은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다시 금강경을 읽으니 대학교 때 불경강독이라는 과목을 수강했었고, 시험으로 금강경을 암기해 쓰는 시험을 봤고, 그것을 강의한 분이 송찬우라는 분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했고, 검색을 해보고 그분이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에 다시 금강경을 봤다. 덕분에 red pine이라는 서구인 동양학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금강경의 주된 논지는 나같은 범인이 이해하기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같은 생각은 금강경의 사구게에 잘 나타나 있다.
첫번째 사구게 - 제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하니라.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으로 본다면, 곧 여래를 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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