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하고 논리적인 사유는 지식의 축적을 가져오며 지식의 진보는 불원간 전통적 질서를 잠식한다. 반면 흐리멍덩한 사유는 구체적으로 도달하는데가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면서 무한정 탐닉될 수 있다.
안드레스키 <요술 사회과학>
너무나 심오한 사상이라서 그것을 담아낸 언어를 평범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상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정직한 사유의 부재를 은폐할 목적으로 난해하게 꾸며진 언어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걸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황제가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전문가의 눈이 필요하다면? 양식 있는 독자라면 《지적 사기》에서 소칼과 브리크몽이 휘두르는 도끼가 정말로 필요하고 더없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들이 제공하는 배경 지식을 통해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책이다.
- 리처드 도킨스
근대 과학은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이며 문화적 보고라 불린다. 그것은 사려 깊고 엄정한 활동을 평가하며 응분의 보상을 준다. 소칼과 브리크몽은 이 자명한 이치가 얼마나 쉽게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적 생활과 인간의 활동에 얼마나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그들은 경험적 탐구의 근본 문제들에 대해 심도 있고 건설적인 비판적 분석을 가한다. 시의적절하면서도 알찬 역저다.
- 노엄 촘스키
- 리처드 도킨스
근대 과학은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이며 문화적 보고라 불린다. 그것은 사려 깊고 엄정한 활동을 평가하며 응분의 보상을 준다. 소칼과 브리크몽은 이 자명한 이치가 얼마나 쉽게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적 생활과 인간의 활동에 얼마나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그들은 경험적 탐구의 근본 문제들에 대해 심도 있고 건설적인 비판적 분석을 가한다. 시의적절하면서도 알찬 역저다.
- 노엄 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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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사기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권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나도 읽지 않는다. 서점에서 조금 들추어 볼 뿐이다. 왜냐하면 주전자의 물이 상했는가를 알기 위해 주전자의 물을 다 마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냥 냄새만 맡아볼 뿐이다.
이 책은 일부 포스프모더니즘 (철)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몰이해한 상태로 과학용어를 그들의 저작에 남용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그러한 행태는 일종의 지적 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물론 조심스럽게 일부 학자들을 비판 대상으로 하지만 사실 이와 유사한 행태의 사기는 인류에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정확하지도 않고 근거가 없는 사실들을 인용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 일들은 너무 흔하기 때문에 정확하고 근거 있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나 책을 찾는 편이 쉽다. (혹은 그 반대인가?)
(비근한 예로 동양철학을 현대물리학으로 설명한다는 그런 유형인데, 사실 이런 유형의 책을 쓰는 사람들은 동양철학과 현대 물리학 양쪽 모두를 거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교, 정치, 학문, 경제의 모든 텍스트와 주장들에서 진실은 사실 한 줌도 안 된다. 팔만대장경에 진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리가 한줌이고 나머지는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한 자기 강화적인 덧붙임인 것과 같다.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자가 아니더라도 칸트나 하이데거와 같은 대가들의 철학서도 어떤 (위대한) 진리가 전혀 말해지는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찬가지의 중언부언이나 헛소리가 태반이다.
이런 일은 학계의 비즈니스 행태와 관계가 있다. 학자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책을 내야하고, 그것도 어려운 소리를 많이 넣어야 추앙 받으며, 일정한 분량이 넘어야 책의 형태로 출판되기 때문에 자기도 잘 모르는 어려운 말을 많이 넣어 두꺼운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경우라도 그 속에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의미 있는 문장들이 몇 개 있는 경우가 많지만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학계의 문제로 한정할 필요도 없이 사기는 인류에 보편화된 삶의 형태라고 보면 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속임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순간 인간은 동물에서 인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기에 처음 넘어가면서 부터 인간다운 인간이 된 것인지 모른다. 이 모멘트는 뱀의 사기에 속아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났다는 비유로 그려지고 있다.)
요즘 인류의 삶의 형태 자본주의 시스템이란 것은 결국 그런 수많은 사기들이 복합체를 이룬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질소를 충전해 과자가 얼마 들어 있지 않은 과자 봉투를 가득 부풀리는 것은 사기가 아닌가? 이런 유형의 사기에 비하면 지적 사기라는 책에 나오는 사기는 생계형 범죄와 같이 죄질이 경한 것이다.
넘쳐나는 쓰레기 정보와 지적 사기의 물결 속에서도 힘들게 웹서핑을 하며 한 줌의 (불변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독한 구도자인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이야기 이지만 철학은 과학처럼 학문이 아니고 하나의 문학 활동이란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의 모든 글들은 그것이 비록 다른 학문에서 볼 수 있는 논문의 형태로 쓰여졌다 해도 사실 형식만 그런 형식을 취할 뿐 본질은 시나 소설과 같이 자기의 감정과 사고를 자유롭게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거기에 어떤 학문적 엄밀함은 없는 것이고 있다 한들 제스처에 불과할 뿐이다. 시인 이상이 방정식이란 단어를 시에 썼다 한들 그것이 수학을 말하고 있는 것이겠는가?
소설가와 철학자가 다른 점은 철학자의 경우가 더 재미 없다는 것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