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5일 목요일

지적 사기


명확하고 논리적인 사유는 지식의 축적을 가져오며 지식의 진보는 불원간 전통적 질서를 잠식한다. 반면 흐리멍덩한 사유는 구체적으로 도달하는데가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면서 무한정 탐닉될 수 있다. 
안드레스키 <요술 사회과학>

너무나 심오한 사상이라서 그것을 담아낸 언어를 평범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상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정직한 사유의 부재를 은폐할 목적으로 난해하게 꾸며진 언어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걸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황제가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전문가의 눈이 필요하다면? 양식 있는 독자라면 《지적 사기》에서 소칼과 브리크몽이 휘두르는 도끼가 정말로 필요하고 더없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들이 제공하는 배경 지식을 통해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책이다. 
- 리처드 도킨스

근대 과학은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이며 문화적 보고라 불린다. 그것은 사려 깊고 엄정한 활동을 평가하며 응분의 보상을 준다. 소칼과 브리크몽은 이 자명한 이치가 얼마나 쉽게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적 생활과 인간의 활동에 얼마나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그들은 경험적 탐구의 근본 문제들에 대해 심도 있고 건설적인 비판적 분석을 가한다. 시의적절하면서도 알찬 역저다. 
- 노엄 촘스키
***


지적 사기라는 책이 있다 책을 권하지도 않을  아니라 나도 읽지 않는다서점에서 조금 들추어  뿐이다왜냐하면 주전자의 물이 상했는가를 알기 위해 주전자의 물을  마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그냥 냄새만 맡아볼 뿐이다.

 책은 일부 포스프모더니즘 ()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몰이해한 상태로 과학용어를 그들의 저작에 남용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그러한 행태는 일종의 지적 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물론 조심스럽게 일부 학자들을 비판 대상으로 하지만 사실 이와 유사한 행태의 사기는 인류에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정확하지도 않고 근거가 없는 사실들을 인용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 일들은 너무 흔하기 때문에 정확하고 근거 있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나 책을 찾는 편이 쉽다. (혹은 그 반대인가?)

(비근한 예로 동양철학을 현대물리학으로 설명한다는 그런 유형인데, 사실 이런 유형의 책을 쓰는 사람들은 동양철학과 현대 물리학 양쪽 모두를 거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교정치학문경제의 모든 텍스트와 주장들에서 진실은 사실  줌도  된다팔만대장경에 진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리가 한줌이고 나머지는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한 자기 강화적인 덧붙임인 것과 같다.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자가 아니더라도 칸트나 하이데거와 같은 대가들의 철학서도 어떤 (위대한진리가 전혀 말해지는 않는 것은 아니지만마찬가지의 중언부언이나 헛소리가 태반이다.

이런 일은 학계의 비즈니스 행태와 관계가 있다학자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책을 내야하고그것도 어려운 소리를 많이 넣어야 추앙 받으며일정한 분량이 넘어야 책의 형태로 출판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어려운 말을 많이 넣어 두꺼운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그런 경우라도  속에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의미 있는 문장들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학계의 문제로 한정할 필요도 없이 사기는 인류에 보편화된 삶의 형태라고 보면 된다인간이 다른 인간을 속임으로써 이익을 얻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순간 인간은 동물에서 인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기에 처음 넘어가면서 부터 인간다운 인간이 된 것인지 모른다. 이 모멘트는 뱀의 사기에 속아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났다는 비유로 그려지고 있다.)

요즘 인류의 삶의 형태 자본주의 시스템이란 것은  결국 그런 수많은 사기들이 복합체를 이룬 것이라고 보면  것이다.  질소를 충전해 과자가 얼마 들어 있지 않은 과자 봉투를 가득 부풀리는 것은 사기가 아닌가이런 유형의 사기에 비하면 지적 사기라는 책에 나오는 사기는 생계형 범죄와 같이 죄질이 경한 것이다.

넘쳐나는 쓰레기 정보와 지적 사기의 물결 속에서도 힘들게 웹서핑을 하며  줌의 (불변의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독한 구도자인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이야기 이지만 철학은 과학처럼 학문이 아니고 하나의 문학 활동이란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철학자의 모든 글들 그것이 비록 다른 학문에서   있는 논문의 형태로 쓰여졌다 해도 사실 형식만 그런 형식을 취할  본질은 시나 소설과 같이 자기의 감정과 사고를 자유롭게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거기에 어떤 학문적 엄밀함은 없는 것이고 있다 한들 제스처에 불과할 뿐이다시인 이상이 방정식이란 단어를 시에 썼다 한들 그것이 수학을 말하고 있는 것이겠는가?

소설가와 철학자가 다른 점은 철학자의 경우가  재미 없다는  뿐이다. 



 

2014년 9월 20일 토요일

바롬 사주


요즘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서인지 길에 천막을 치고 사주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좋은 현상은 아니고오히려 불황을 의미하는 지표라고   있습니다.

궁산명부소향(窮算命富燒香)이라고 어려운 사람은 푼돈을 내고 사주나 점을 보고 부자들은 절이나 교회를 가서 큰돈을 내고 시주 헌금을 합니다.

그래서 사주를 보는 사람이 는다는 것은 사회 전체의 생활이 그만큼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일례로 일본도 버블경제가 꺼질 무렵에 사주 추명학이 크게 흥했다가  단계를 넘어서자 쇠퇴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어려워지면 점이나 사주도   만큼 형편이 나빠진다는 뜻이겠죠.

어찌 되었건 길거리 사주에 사람들이 몇몇 사주를 보는데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도대체  믿고 사주를 보고 있는 것일까요길에다 천막을  사람이 도대체 사주를   안다는 증거가 있나요?

그냥 심심풀이로 보는 거니까 천막 안의 사람이 실력 있는 사주쟁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겠다는 사람도 있겠고그래도 기십만  들여 천막 만들고 자리  거니까 믿고 봐야지 어쩌겠냐 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세상은 요지경이라 하겠습니다.

혹시 압니까심산유곡에서    수도한 도통한 도사가 심심파적으로 길거리에서 사주를 봐주고 있을지.

나는 유료로 인터넷 사주를   적이 없지만 중국어로  사이트의 무료 사주는   보았는데명식이 정확하게 나오고 경우에 따라 그래프로 일생의 운세의 강약도 보여주고사주 고전들의 해당 문구를 연결시켜 보여주는  의미는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운명을 예측하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컴퓨터로 사주 명리학을 구현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겠지요저부터 자신의 명리 정보를 쉽게 도표와 그림으로   있는 그런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당연히 듭니다.

그런 이유로 바롬에서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가 가칭 <명리 리포트>라는 서비스입니다개인의 사주 명리 정보를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해서 도표와 해설로 보여주는 그런 서비스입니다일반적인 명리 해설은 물론 평생에 걸쳐  연도마다 운의 좋고 나쁨을 파악할  있게 해주는 그런 서비스 입니다.

현재 개발이 거의 완료되어 내부적으로 알파 버전을 테스트 중입니다정확한 만세력을 바탕으로 정통 명리학의 이론을 알고리즘으로 만든 프로페셔널한 서비스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개발 완료 목표인 8월말을 넘겼습니다만, 10 중에는  인터넷을 통해 일반에 공개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주명리학을 통해 인생의 미래를 예측할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 것이 바롬의 공식 입장입니다하지만개인의 명리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이전에 유래가 없던 정도로 정확하게 리포트로 만들어 보여주겠다는 것이 바롬의 주장입니다.

공개되는 시점까지 조금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바롬 이름과 미래(baromnf.com)
김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