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9일 화요일

낭환집서


蜣蜋自愛滾丸 不羨驪龍之珠 驪龍亦不以其珠笑彼蜋丸
말똥벌레는 스스로 제 말똥구슬을 아껴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으며, 용 역시 그 여의주로써 말똥벌레의 말똥구슬을 비웃지 않는다.

***

여의주는 없으니내가 가진 낭환이라도 소중히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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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무(子務)와 자혜(子惠)가 밖에 나가 노니다가 비단옷을 입은 소경을 보았다. 자혜가 서글피 한숨지으며,
“아, 자기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기 눈으로 보지를 못하는구나.”
하자, 자무가,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자와 비교하면 어느 편이 낫겠는가?”
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청허선생(聽虛先生)에게 함께 가서 물어보았더니, 선생이 손을 내저으며,
“나도 모르겠네, 나도 몰라.”
하였다.
옛날에 황희(黃喜) 정승이 공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그 딸이 맞이하며 묻기를,
“아버님께서 이〔〕를 아십니까? 이는 어디서 생기는 것입니까? 옷에서 생기지요?”
하니,
“그렇단다.”
하므로 딸이 웃으며,
“내가 확실히 이겼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며느리가 묻기를,
“이는 살에서 생기는 게 아닙니까?”
하니,
“그렇고 말고.”
하므로 며느리가 웃으며,
“아버님이 나를 옳다 하시네요.”
하였다. 이를 보던 부인이 화가 나서 말하기를,
“누가 대감더러 슬기롭다고 하겠소. 송사(訟事)하는 마당에 두 쪽을 다 옳다 하시니.”
하니, 정승이 빙그레 웃으며,
“딸아이와 며느리 둘 다 이리 오너라. 무릇 이라는 벌레는 살이 아니면 생기지 않고, 옷이 아니면 붙어 있지 못한다. 그래서 두 말이 다 옳은 것이니라. 그러나 장롱 속에 있는 옷에도 이가 있고, 너희들이 옷을 벗고 있다 해도 오히려 가려울 때가 있을 것이다. 땀 기운이 무럭무럭 나고 옷에 먹인 풀 기운이 푹푹 찌는 가운데 떨어져 있지도 않고 붙어 있지도 않은, 옷과 살의 중간에서 이가 생기느니라.”
하였다.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말을 타려고 하자 종놈이 나서며 말하기를,
“나으리께서 취하셨군요. 한쪽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른 한쪽에는 짚신을 신으셨으니.”
하니, 백호가 꾸짖으며
“길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짚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길 왼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니, 내가 뭘 걱정하겠느냐.”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논할 것 같으면, 천하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발만 한 것이 없는데도 보는 방향이 다르면 그 사람이 짚신을 신었는지 가죽신을 신었는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참되고 올바른 식견은 진실로 옳다고 여기는 것과 그르다고 여기는 것의 중간에 있다. 예를 들어 땀에서 이가 생기는 것은 지극히 은미하여 살피기 어렵기는 하지만, 옷과 살 사이에 본디 그 공간이 있는 것이다. 떨어져 있지도 않고 붙어 있지도 않으며, 오른쪽도 아니고 왼쪽도 아니라 할 것이니, 누가 그 ‘중간〔〕’을 알 수가 있겠는가.
말똥구리〔蜣蜋〕는 자신의 말똥을 아끼고 여룡(驪龍)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여룡 또한 자신에게 구슬이 있다 하여 ‘말똥구리의 말똥〔蜋丸〕’을 비웃지 않는다.
자패(子珮)가 이 말을 듣고는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로써 내 시집(詩集)의 이름을 붙일 만하다.”
하고는, 드디어 그 시집의 이름을 ‘낭환집(蜋丸集)’이라 붙이고 나에게 서문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내가 자패에게 이르기를,
“옛날에 정령위(丁令威)가 학()이 되어 돌아왔으나 아무도 그가 정령위인지 알아보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격이 아니겠는가. 《태현경(太玄經)》이 크게 유행하였어도 이 책을 지은 자운(子雲 양웅(揚雄))은 막상 이를 보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소경이 비단옷을 입은 격이 아니겠는가. 이 시집을 보고서 한편에서 여룡의 구슬이라 여긴다면 그대의 짚신〔〕을 본 것이요, 한편에서 말똥으로만 여긴다면 그대의 가죽신〔〕을 본 것이리라. 남들이 그대의 시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이는 마치 정령위가 학이 된 격이요, 그대의 시가 크게 유행할 날을 스스로 보지 못한다면 이는 자운이 《태현경》을 지은 격이리라. 여룡의 구슬이 나은지 말똥구리의 말똥이 나은지는 오직 청허선생만이 알고 계실 터이니 내가 뭐라 말하겠는가.”
하였다.

연암 박지원, ‘낭환집서’ 


바롬 이름과 미래(baromnf.com)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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