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포스트에 이어 마이클 셔머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에 대한 마지막 포스트를 써보고자 한다. 이 책과 한국에 사기 범죄가 많은 이유와는 연관이 있다.
일전에 인터넷 기사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범죄 유형 중 한국에는 사기가 많다는 기사를 봤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한국에는 사기꾼이 많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런 근거도 일단 없지만 재미도 없어서 글을 계속 쓰지 못할 것이다. 한번 비틀어 한국에는 사기에 넘어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라고 말을 해야 글을 쓸 만큼의 재미가 생길 것이다. 여기서 <어리석은>에 괄호를 친 이유는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반드시 어리석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란 점을 표시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기꾼이 아무리 많아도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없다면 사기 범죄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사기꾼이 단 한 명이라도 사기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면 사기 범죄 건수가 올라갈 것임은 당연하다.
결국 한국에 사기 범죄가 많다는 것은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고, 그렇게 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한국민들의 민족적, 유전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배경에서 연유한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그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것과 같은 이유가 될 터인데, 왜냐하면 사기를 당하는 것과 (믿을 근거가 없는) 이상한, 또는 잘못된 것을 믿는 것과 이름만 다르고 실체는 동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한국민들에 사기를 많이 당하는 이유를 추측해 보자. 먼저 높은 인구밀도, 한국민의 유전적 성향을 그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단기간에 기술 발전이 이루어져 사회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부연하면 사회의 스펙트럼이란 한국 사회 안에는 일제 시대부터 살아왔던 농경 사회에 해당되는 할아버지들부터 산업사회에 살았던 아저씨들, 정보사회에 살고 있는 젊은이 등을 아울러 다양한 기술 배경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것들 말고도 많은 것이다.
한가하게 이런 다양한 요인들을 생각해 내고 그것들의 사기 범죄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하지 않고, 대담하게 사기 범죄에 기여하는 단 한가지의 요인을 추측해 본다면 무엇일까?
바로 <권위에 대한 과도한 신뢰> 이다. 한국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권위를 신뢰한다. 예를 들어 보자.
이름도 모르는 건강식품회사나 의료기기 회사에서 어떤 제품을 들고 나오면 아무도 안 살 만큼 한국사람들은 조심스럽지만, 거기에 무슨 대학교수랍시고 얼굴 사진을 찍어 신문기사를 만들고 추천합니다 한마디 적어주면 사는 사람이 많이 생겨난다.
학계에 대한 권위, 미디어에 대한 권위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모 일간지에 쓸모 없는 산비탈의 땅을 전원주택지라고 속여 분양광고를 내면 사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바로 미디어에의 권위에 대한 과도한 신뢰에 빠져 있는 사람의 경우다.
케이블 티비의 증권 방송에 나와 쓰레기 종목을 우량 주식이라고 추천하는 사람은 증권전문가라고 소개되지만 그 사람의 실체나 배경이나 능력은 제대로 검증된 것이 없지만, 그 사람의 말을 믿고 쓰레기 주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난다.
이런 예는 무수히 들 수 있는데, 바로 사람들이 미디어나 학계에 대한 권위를 과도하게 신뢰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잠재적인) 사기 범죄들의 유형 이다.
대중에의 파급력이 가장 크다는 점에서 미디어가 사기에 가장 많이 기여하고, 다른 권위들은 단독으로 사기를 유발한다기 보다 미디어의 권위에 기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예능 방송에는 역술이나 타로나 점술들의 대가라고 소개되면서 연예인들의 운세를 봐주어 유명세를 떨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한번 방송에 출연한 후에는 상담 요청이 쇄도하고 상당한 수입을 올리게 된다.
사람들의 사고는 이런 것이다. <이 사람이 방송에 출연할 정도면 대단한 대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방송에 출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이 같은 사고는 철저히 잘못된 것이다.
방송에서 방송에 출연할 역술인을 선택하는 데는 실력 말고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외모나 언변이 된다든가, 무료로 방송에 출연하기로 약속을 했다든가, PD가 개인적으로 안다던가, 방송간부가 돈을 받고 출연을 시켜줬다던가, 그냥 급작스럽게 연락이 됐다든가 하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람들은 방송은 선량하고, 정직하고, 신뢰할 만한 존재라고 이미 믿고 있는 것이다. 권위를 신뢰하고 그것에 복종하며 그것에 의해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귀찮지만 다른 분야의 예를 몇 개 더 들어보자.
정부가 관리하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라고 믿고 가습기의 세정제를 사용하다가 죽음에 이른 경우.
이름이 잘 알려진 대기업 브랜드의 아파트를 샀다가 하자가 많아서 어려움을 당한 경우.
정부정책의 방향이라 하길래 사업을 확장했다가 정부 정책이 금방 바뀌어 손해를 본 경우.
주변 사람들이 하도 유명하다 하기에 점을 치러 점집에 갔다가 굿을 해야 한다 해서 몇 백만 원 굿 값을 준 경우.
유명 정치인이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인격자인 줄 알고 선거에서 뽑아주었는데, 성추행이나 하고 다니고 기업인들과 내통해 뒷돈을 받고 국민들에게 손해 되는 정책을 입안하는 경우.
이런 예는 충분히 한가하다면 수 천 가지라도 들 수 있는데, 공통점은 사람들이 권위를 과도하게 신뢰함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피해라는 점이다.
따라서 단일한 요소로 사람들이 사기에 넘어가는 가장 주된 이유는 <권위에 대한 과도한 신뢰>라고 추측해 보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이다. 사기를 당하는 원인이 권위에 대한 신뢰란 것을 알았다면, 권위를 이용해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권위자들은 선량하고 사람들에게 대부분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선입견에 빠져 있다. 하지만 권위자라는 것은 대부분 권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고 권위자가 될 만큼 능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이라도 똑똑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정해 보자. 그 다음, 똑똑한 권위자들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권위를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다음 논리적인 귀결은 무엇인가? 똑똑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가진 권위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이용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한다는 점이다.
권위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신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 믿음을 조금 배신하기만 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이클 셔머의 책에도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로 <권위에 대한 신뢰>가 한 요인임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이 주제는 짧은 블로그 포스트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심각한 주제이다. 수천 가지의 예들을 모아 책을 쓸 수 있고 거기에 <믿고 있었다면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든가 <믿는 당신이 호구다> 라든가 <믿는 만큼 당하는 사회> 라는 식의 제목을 붙여 출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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