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같이 간다. 동전에 양면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자주 삶을 이야기 하지만 죽음은 드물게 이야기한다. 생명에게 죽음을 이야기 하는 것은 터부라서 그럴 수 있다. 아니면 이야기 해봐야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기에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현명한 생각이다. 고민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고민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필론의 돼지와 같은 마음가짐인데, 이런 것도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고 경지에 올라야 가능할 법 하다.
그래서인지, 음택풍수를 말하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죽음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음택풍수라 하면 사자를 위해 좋은 환경의 매장지를 선택하는 동양 술수를 말함인데, 삶에 필요한 좋은 환경을 찾는 양택풍수와 대비되는 것이다.
음택풍수에 대한 거부감과는 별개로 그 효과에 대해서 불신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음택풍수의 근본 주장은 사자를 좋은 지리 환경에 매장하면 사자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사자와 후손들에게 미친다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 하면 조상묘를 잘 쓰면 후손이 잘된다는 것이고, 잘 못쓰면 후손이 망한다는 것이다. 명당에 조상의 산소를 쓰면 조상이 산천의 좋은 지기(地氣)를 받아 자손들도 복(福)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사실일까? 과학적으로 이런 주장은 입증할 수 없는 주장이며, 수많은 반증 사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매장과 후손과의 상관 관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다행히 이런 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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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택(陰宅) 발복(發福) 통계적 분석 명당 복은 3대 후손이 받아”
풍수 연구하는 첨단공학자 이문호 교수
원본 위치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4/02/21/201402210500014/201402210500014_2.html>
그가 풍수를 연구한다면 모두 놀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력을 보면 풍수와는 거리가 멀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7세에 영남대 공과대에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 현재 영남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겸 대학원 응용전자학과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공학자로서 다양한 업적을 쌓았다. 환경 계측 감시용 초전형 감열 및 가스센서를 개발하고, 지자기(수맥)와 관련한 국내외 특허만도 20여 건을 가졌다. 특히 2002년 세계 최초로 석유 및 지질조사 장비인 비시추·비접촉 지질 탐사기를 개발해 지질탐사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운명적으로’ 풍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4년 풍수지리를 공부한 대학원 학생과 인연을 맺으면서다.
“풍수지리가 2명이 우리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풍수를 연구하는 데는 지질조사가 중요합니다. 지질조사를 할 때 응용전자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저더러 논문 지도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손사래를 쳤죠. 풍수라면 그땐 속된 말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도 끈질겼지만 제자들은 더 끈질겼죠. 그래서 어디 한 번 나를 믿게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풍수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면 근거와 논리를 갖춰야 한다면서 데이터를 정리해보라고 요구했습니다. 해오더라고요. 놀랍고 신기해서 제가 두 손 들었습니다.(웃음)”
그들은 전국 수천 기의 묏자리를 찾아 입지를 분석하고 족보를 찾아 묘소 주인의 후손 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는 신기했다. 경사가 심한 산비탈이나 산꼭대기에 쓴 묘소 주인의 후손 수가 급감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를 보고 그는 자신이 주도해서 연구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풍수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풍수가 아무리 관습이고 관념이라 하지만, 맞는 것이 없고 허무맹랑하기만 했다면 아마 일찍이 버려졌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 천 년을 유지해왔다는 것은 무언가 경험적으로 맞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주말마다 귀신에 홀린 듯 제자들을 따라 전국의 묏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동안 돌아본 묏자리만 1만5000기에 달한다. 그렇게 그가 풍수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겠다고 도전한 지도 어언 10년째다.
그는 풍수를 과학으로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8년을 투자했다고 고백한다. 그가 찾은 답은 통계학적인 분석이었다. 그 결과를 2012년 ‘오묘한 지구-풍수도 과학이다’란 책을 통해 정리한 바 있다. 물론 그전에도 ‘좋은 집이 우리를 건강하게 만든다’(2005), ‘공학박사의 음택풍수기행’(2006), ‘조상을 잘 모셔야 자손이 번성한다’(2007) 등 풍수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그리고 최근 그것을 잇는 ‘명당-부와 권력의 운명을 풍수과학으로 풀어쓴 이야기’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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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내용 중 관심을 그는 부분은 산비탈이나 산꼭대기에 묘를 쓰면 후손에게 좋지 않다는 부분이다. 아마 이 주장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가설을 세워보자.
가설1-1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부모의 묘를 좋은 장소에 매장할 경제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매장지인 산비탈이나 산꼭대기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그 이후의 삶도 어려워지고 그 후손들도 성공하기 힘들어진다.
가설 1-2 (1-1의 변형이다)
경제적으로 부자인 사람들은 좋은 매장지에 조상의 묘를 쓴다.
이미 경제적으로 풍요하기 때문에 그 후손들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위 가설에 따르면 좋은 곳에 조장을 매장해서 후손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경제적으로) 잘 된 후손이 매장지를 좋은 곳으로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풍수의 주장은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어 있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에 흔하게 보는 독립변수와 종속변수가 도치된 오류에 해당한다고 보겠다.
가난뱅이가 부모의 묘를 명당에 쓸 수 없는 일이며, 재벌이 부모의 묘를 산비탈에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을 음택풍수가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 매장 환경이 (이미 사망한) 매장자에게 (알 수 없지만 어떤) 영향을 끼치고, 다시 매장자와 그 후손간의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한) 영향관계가 성립한다는 2단계의 주장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번째. 매장을 하였는데 봉분에 해충이 있거나 수해가 있거나 하는 등으로 환경이 나쁘다면, (죽은 사람은 이미 무기체로 여긴다하더라도) 당연히 후손들은 심정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고 매장의 근본 기능 즉 사체를 온전히 보전한다는 기능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알 수 없는 영향을 따지기 전에 좋은 매장 환경을 추구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두번째. 죽은 조상과 후손의 상관관계. 보통 풍수가들은 이것을 동기감응이라는 그럴 듯한 말로 설명한다. 풍수의 고서에 의하면 백여리 떨어진 곳의 구리광산이 무너지자 그 광산의 구리로 만든 동종이 울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어떤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멀리 떨어진 곳에 사람과 그 사람의 정자를 각각 위치시키고 사람을 놀라게 했더니 정자가 움직이더라 하는 식의 실험이 검증되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터무니 없는 주장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이런 것과 가장 가까운 과학적은 사례는 아마도 공진이 아닌가 한다.
공진[ 共振, resonance ]
특정 진동수를 가진 물체가 같은 진동수의 힘이 외부에서 가해질 때 진폭이 커지면서 에너지가 증가하는 현상
모든 물체는 고유진동수를 갖고 있으며 이 고유진동수에 해당하는 전파나 파동을 흡수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진원지에서 멀어질수록 진동이 약해지지만, 공진현상이 일어나면 진원지에서 멀어질수록 오히려 진동이 강해진다. 우리 주위에서는 공진현상을 활용한 많은 기술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자기공명영상(MRI)촬영 장치가 있다. MRI는 물을 구성하는 수소 원자핵의 고유진동수와 똑같은 주파수의 진동을 일으켜 인체 내부를 촬영하는 장치다. 아울러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거나 TV 채널을 바꾸는 것은 공진현상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풍수의 주장 내용이 공진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아직 과학이 알지 못하는 공진과 유사한 메커니즘이 생명체의 개체와 그 후손에 작동하고 있을 일말의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든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전표면이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팡세>라는 책에서 파스칼은 신을 믿는 이유를 노름의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신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현명한가?”를 두고 사람들과 내기를 걸었다. 그에 따르면 사후(死後)에 신자는 천국이 있으면 다행이고 없어도 그만이지만, 비신자는 지옥이 없으면 다행이고 있으면 큰 낭패이므로 신자는 밑져야 본전이고, 비신자는 밑지는 장사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파스칼 자신이 주장하는 철학적인 신의 존재 증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설득력 있는 쉬운 예를 들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음택풍수도 마찬가지다. 조상묘를 잘 써서 잘되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좋은 매장지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비용 이외에는) 별로 잃을 것은 없으니 경제적인 능력만 된다면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파스칼의 비유와 같은 것이다.
같은 식으로 생각한다면, 로또를 계속 사는 것이 안 사는 것 보다 낫다는 결론이 될 터인데, 복권을 두고 통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매기는 세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보면,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는 이미 논쟁 거리가 아니고 선택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택풍수에 대한 논의를 터무니 없이 확장시켜 우주적 차원으로 들어가보자.
(파스칼이 또 말한대로) "공간에 의해서 우주는 나를 싸고, 하나의 점으로서 나를 삼킨다. 그러나 사고(思考)에 의해서 나는 우주를 싸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주적 차원에서 보아 어디에 명당이 있겠는가?
(조상이든 후손이든) 그냥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에 살고 있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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