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4일 금요일

미래창조과학부 최장관의 창조경제


미래창조과학부  최양희 장관이 창조경제에 대한 정의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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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25일 "창조경제 추진에 따른 변화의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면서 "조만간 신설법인과 벤처기업 수 등에서 폭발적 모드로 들어설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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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장관은 창조경제란 창의성을 우리 경제 핵심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정의라면 김대중 노무현 때부터 계속해오던  아닌가사실 김대중 이전 부터 그렇게 했었다달라진 것이라고는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가 없어진   아닌가정의에 나오는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부서를 없애 버리고 사대강을 열심히  것은 이명박이다.

부서의 이름으로만 봐도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가 실체적인 이름이라면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이름은 뜬구름 잡는 이름이라 하겠다.




박근혜의 창조경제

창조경제란 말은 무서울 정도로 무의미한 말이다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을 사람들이 자주 쓴다며 그것은 말세의 징후일 것이다.

하지만 허접하게 생각되는 신문사가 만든 사전에는 나오는 용어이다.

한경 경제용어사전
창조경제
[ Creative Economy ]
창조경제란 말은 영국의 경영전략가인 존 호킨스(John Howkins)가 2001년 펴낸 책 The Creative Economy에서 처음 사용됐다. 그는 '창조경제란 새로운 아이디어, 즉 창의력으로 제조업, 서비스업 및 유통업, 엔터테인먼트산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창조경제를 강조함으로써 다시 한번 관심을 끌고 있다. 박대통령은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이라며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가겠다"고 강조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조경제 [Creative Economy] (한경 경제용어사전,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 )


 호킨스라는 사람의 말이 맞다  치더라도 그런 주장을 하기 위해 일부러 책을 써야  필요가 있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인간의 창조력 때문에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아주 오래전 인물인 슘페터란 사람은 창조적 파괴란 말을 썼다.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슘페터가 기술의 발달에 경제가 얼마나 잘 적응해 나가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했던 개념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가져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창조적 혁신을 주창했으며, 특히 경제발전 과정에서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 행위를 강조하였다.
1912년에 발표한 <경제발전론>에서 슘페터는 이윤이 기업가의 혁신에서 발생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이윤은 혁신적인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행위'로 인한 생산요소의 새로운 결합에서 파생되며, 이윤이란 바로 창조적 파괴행위를 성공적으로 이끈 기업가의 정당한 노력의 대가라는 것. 이후 다른 기업인에 의해 이것이 모방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윤이 소멸되고, 새로운 혁신적 기업가의 출현으로 다시 사회적 이윤이 생성된다고 본다. 다시 말해 '기술혁신'으로서 낡은 것을 파괴, 도태시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변혁을 일으키는 '창조적 파괴' 과정이 기업경제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경제적 성공의 대부분이 창조적인 활동에서 나온다는 지당한 사실을 아는 지금에창조경제란 말을 들으면창조력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란 말인지경제를 창조하란 말인지    없지만하나마나  무의미한 말이라는 생각은 든다.





이명박의 녹색성장

살다 보면 해괴망측한 말을 들을 때가 있다녹색성장이란 말도 그런 것이다.

지식경제용어사전
녹색 성장
[ Green Growth ]
환경(Green)과 성장(Growth) 두 가지 가치를 포괄하는 개념. 기존의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환경친화적으로 전환하는 과정 중 파생되는 에너지, 환경관련 기술, 산업에서 미래유망 품목과 신기술을 발굴해내고 기존 산업과의 상호융합을 시도해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네이버 지식백과] 녹색 성장 [Green Growth] (지식경제용어사전, 2010. 11., 대한민국정부)


 녹색성장이란 조어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말인지 아니면 이전에 외국에서 있던 말인지   없다.
 하지만 Green Growth라고 인터넷에 치면 위키피디아에도 나오고 그러는 용어인 것을 보면 외국에도 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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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erm green growth has been used to describe national or international strategies.
Green growth, as agreed at the fifth Ministerial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in Asia and the Pacific, is a strategy for achieving sustainable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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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녹색성장이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환경을 보존하는데 관심을 갖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녹색성장이란 용어가 마치 경제발전을 위해 녹색산업  환경산업을 육성하는 일처럼 여겨졌는데 이는 심각한 잘못이다.

물리학의 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환경 보전과 경제 발전이 병립할  없는   것을  알고 있다다시 말해 환경을 보전하면서 GDP 올리는  따위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엔트로피 법칙 따위는  턱이 없는 정치인들은 녹색성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무슨 일을 하는  광고는 하였으나정작 그들이  일은 자신들의 사익을 채우고 환경을 파괴한  외에 없다.

만약 녹색성장이 환경을 보존하는 동시에 경제를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이해하였다면그런 일은 달성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니라  미스노머에 불과하다.

환경을 위해 외형적인 경제 성장을 멈추고 지속 가능한 한도 내에서 경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조금은 옳다.

그렇다면이명박 집권 오년 동안 사람들은 녹색성장을 무슨 뜻으로 이해했는가무슨 뜻이던 간에 환경이나 경제를 나아지게 하기 위해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2015년 7월 21일 화요일

기투와 피투

맨날 작명이나 사주 이야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무식한 사주쟁이라고 평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간혹 유식한 말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오늘은 문득 사르트르가 떠올랐다떠올랐다고 해도 사르트르라는 사람이나  철학에 대해   도리는 없는 것이다예전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보았던 기투라는 용어가 생각났던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오래 전에 책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하게   없는 말이 가득하였다  없는 모든 말이 심오하거나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마찬가지로 내가 절대 이해할  없는 말들 가운데 진리가 있을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다른 철학들과 마찬가지로 사르트르의 말들도 진리이거나 넌센스에 불과하거나   하나일 것이다물론 내기를 걸어야 한다면 넌센스에 걸겠다. <무를 무화한다> 어떤 철학자의 말이 넌센스가 아니라면 무얼까?

철학자는 남들이   없는 말을 지꺼리는 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며대부분의 학자는 공부하는 시늉을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이고 말한다면 나를 보고 심사가 꼬여있는 사람이고 말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누군가 블로그에 정리한 글이 조금 이해될  하지만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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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정리
 이러한 사르트르의 존재론에서 들어나는 의식의 주체인 인간의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인간은 항상 자유롭다는 점이다. 즉 인간은 자유롭지 않을 자유가 없으며, 영원히 자유롭도록 '선고'를 받은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자유라는 것은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재론적 특성, 즉 무언가를 지향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당연한 결과이다. 따라서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실존의 어려움을 껴안고 살아가는 존재로 여겨진다. 인간은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의식을 비어 있는 상태로 둘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세계에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겨냥하고 잘라내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함과 동시에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의식의 지향성의 구조를 채워야만 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죽을 때까지 결여로 있는 자신의 의식을 무엇인가로 계속해서 채워야 하는 실존의 조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사물존재의 존재론적 우위, 곧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존재 (대자존재) 에 대한 즉자존재의 ‘존재론적 우위’를 이해할 수 있다.
[출처]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작성자 Roquen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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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의식은 끊임없이 대상을 주시하게 되는데이러한 의식을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몸이나 정신을 주시하도록 변경하며최종적으로는 아무 대상에 대해 주시하지 않도록 수행 하는 것이 불가나 선가의 가르침이 아닌가?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여기서는 기투와 피투에 대해 메모를 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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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사전
기투
企投, Entwurf, projet ]
외국어 표기
pro-jet(프랑스어)
하이데거에게서 유래하는 용어. 『존재와 시간』에 따르면 기투(실존성)는 피투성(사실성) 및 퇴락과 더불어 현존재의 존재인 조르게(관심)를 구성한다. 현존재의 개시성의 하나의 계기인 이해는 기투라는 실존론적 구조를 지닌다. 즉 이해는 현존재가 스스로의 존재 가능성을 향해 몸을 던지는(스스로를 기투하는) 일인바, 기투는 스스로의 존재 가능(Seinkönnen)에로 개시하면서 관계하는 가운데 존재하는 일인 것이다. 그때 현존재는 스스로를 세계(세상)로부터 이해 · 기투함(비본래적 기투)일 수도,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으로부터 이해 · 기투함(본래적 기투)일 수도 있다. 또한 가능성은 무차별적인 자유가 아니고 현존재는 한정된 가능성들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기투는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피투적인 기투이다.

계보를 더듬어 가면 기투는 후설의 '나는 할 수 있다'를 전개시킨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근대적 주관성의 자율적 능동적 성격을 계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회> 이후의 하이데거는 기투보다 피투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존재에 의해 던져져 존재의 밝힘 속으로 탈자적으로 서는 것이 피투적 기투라고 해석하게 된다. 다른 한편, 기투는 하이데거 이후의 철학, 특히 현상학에 의해 수용되었다. 사르트르는 의식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향해 즉자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기투라고 부르며, 전기 메를로-퐁티는 후설의 의식의 지향성을 신체의 세계기투(세계에 내속하면서 세계를 경험하고 묘사하는 것)라고 해석하여 현상학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고토 요시야(後藤嘉也)
[네이버 지식백과] 기투 [企投, Entwurf, projet] (현상학사전, 2011. 12. 24., 도서출판 b)

피투성
[ Geworfenheit, thrownness, 被投性 ]
피투성(내던져져 있음)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세계 속으로 우리가 이미 던져져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반성하여 알기 이전에 이미 언제나 하나의 세계 속에 들어선 채로 머물고, 이러한 사실은 불안과 같은 일정한 기분 속에서 뒤늦게 알려진다. 이 점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세계 속으로 피투된 세계-내-존재인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투성 [Geworfenheit, thrownness, 被投性]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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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상에 피투된 가운데 기투할  있는 존재가 인간이란 말인데쉬운 말을  어렵게 썼다는 생각이 든다인간은 가능한 한도 내에서 자유롭단  아닌가?

무식한 사주쟁이로서 다시 표현해 본다면인간이 피투된 것은 사주팔자라는 명운이 있기 때문일 터이고기투할  있다는 것은 사주팔자도  맞는 구석이 있다는 말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