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31일 수요일

도연명과 마르크스와 인타임의 세계


도연명은 29세에 미관말직(微官末職)에 있었으나 곧 그만 두고 그 후에도 한직(閑職)에 머물었으나 군벌들의 권력 싸움을 보며 염증을 느꼈다. 41세 때엔 누이의 죽음이 있었는데 그것을 기화로 팽택현(彭澤縣) 현령을 지내다가 사임하였다. 그때 도연명이 사임한 저 유명한 사임사(辭任辭) ‘오불능위위오두미절요(吾不能爲五斗米折腰)’는 유명하다.

마침 이때에 즈음하여 현의 상관이 순시를 온다고 하였다. 상급관리가 오니 의관을 정제하고 관아를 깨끗이 정리 정돈해 놓으라는 것이었다. 도연명은 내 어찌 쌀 다섯 말에 허세부리는 소인배 관리에게 허리를 굽실 거릴 것인가! 라고 소리치며 사임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 후로 자연을 벗 삼으며 손수 호미를 들고 밭을 매며 농사를 짓는 일생을 살았다.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놓고 자칭,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그때 전원으로 돌아오며 쓴 시가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그 외에 ‘귀원전거(歸園田居)’, ‘도화원기’가 있다.

그러나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한 그는 41세 때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펑쩌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을 사임한 후 재차 관계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의 퇴관성명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사전(史傳)에는 상관의 순시 때에 출영(出迎)을 거절하고, “나는 5두미(五斗米)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라고 개탄하였다고 적혀 있다. 향리의 전원에 퇴거하여 스스로 괭이를 들고 농경생활을 영위하여 가난과 병의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62세에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그 생애를 마쳤다. 후에 그의 시호를 정절선생(靖節先生)이라 칭하였다. 그의 시는 4언체(四言體) 9편과 그때에 유행하던 5언체(五言體) 47편이 전해지고 있지만, 기교를 그다지 부리지 않고, 평담(平淡)한 시풍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로부터는 경시를 받았지만, 당대 이후는 6조(六朝) 최고의 시인으로서 그 이름이 높아졌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도연명 [陶淵明] (두산백과)

귀거래사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자
田園將蕪湖不歸(전원장무호불귀집의 논밭이 황폐해 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旣自以心爲形役(기자이심위형역이미 스스로 마음을 육신의 부리는 바가 되게 했구나.
奚惆悵而獨悲(해추창이독비한탄하고 홀로 슬퍼한들 무엇 하리
悟已往之不諫(오이왕지불간이미 지나간 것은 돌이킬  없음을 알겠고,
知來者之可追(지래자지가추다가올 일은 따라 볼만 함을 알겠다.
實迷塗其未遠(실미도기원실로 길을 헤메임이  멀어지기 전에,
覺今是而昨非(각금시이작비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알겠네.

***

도연명에 대해 오랜만에 다시 찾게  것은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신정근>이라는 책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면 도연명의 유명한 <오불능위위오두미절>라는 말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내가 보기엔 말하자면 <오불능위위오두미절요> 하는 일에 비해 급여가 적으니까  못하고 그만 두겠다는 것이다인사하는  싫다는 것은 요즘 말로 하면   받고 감정 노동까지 하는 것은 못하겠다는  이겠다.

그래서 자발적 실업자가 되어 고향에서 농사라도 지으며 살겠다는 것인데그래도 도연명은 고향에 돌아갈 집도 있고 부쳐먹을 밭뙈기라도 있었던 것이다!

도연명의 세계는 그나마 돌아갈 곳이 있는 세계이다.

도연명의 이런 세계는 나로 하여금 자유연상에 의해  마르크스에 대해 생각이 나게 하였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단지     학창시절에 마르크스 철학에 대한 해설 요약본을    적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무렵만 해도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해 요약 정리한 외국 서적을 번역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는 했다서광사라는 출판사가 서양철학에 관한 책들을 많이 내던 것이 기억이 난다내가 읽었다는 마르크스에 관한  책도 여러 철학자들을 다룬 시리즈 중의  권인  같은데 표지가 연두색녹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이런 기억이 정확할 리는 없다.

  무렵에 주황색 표지로  자본론 번역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베이지 또는 흰색 표지의 자본론 번역이  나오던 그런 시기였다.

내가 아는 마르크스 사상을 정리해 본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싫던 좋던 생산체계 교환체계에 편입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소유권이 있으므로 생산과 교환에 대상이 되는 자본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노동력 밖에 의존할 것 없는 노동자가 된다.
 체계에 참여를 거부하는 사람은 체계 밖에 밀려나게 되고 체계 밖에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죽을  밖에는 없게 된다.
자본가들에 유리한  시스템에서 노동자는 노동을 하고 실제 가치보다  적은 보수를 받게 된다.
노동자에게 보수를  주고 남게  소위 잉여가치라는 것은 자본가들의 자본 축적에 기여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적은 보수를 받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비용들은 자본가들에 보다 많이 지불하게 되기 때문에 점점 궁핍해진다.
이런 사이클은 계속 반복 강화되며경제 체계내의 만성적인 공급과잉과 수요부족을 유발하고 경제적 공황을 주기적으로 만들어 내게 된다.
….
결국 참지 못한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키고 사회는 공산사회로 전환된다.

대충 이런 식이다물론 이런 정리가 마르크스 사상을  정리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그냥 내가 생각하는 피상적인 견해이다.

마르크스에 대해 생각나는   하나는 학창시절 무렵 누군가 영문 원서로  마르크스 서적을 보여준 것인데기억에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라고 생각되지만 물론 이런 기억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생산 교환체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체계에서 축출된다는 의미로 pumped out 이란 용어를 강조한 것은  사람이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마르크스의 저작  pumped out 여러 문맥에서 자주 사용되는 술어였지만 앞서 말한 의미로 사용된 것은 없는  같았다.

가장 많이 검색되는 것은 자본론 3권의 제47장 <자본주의적 지대의 발생사> 포함된 문장이다.
노동자의 보수를 받지 못하는 잉여노동이 자본가들에게 잉여이익으로 퍼내져 나온다는 맥락인  같다.

어찌 되었건나는 마르크스 사상에 대해 옹호하거나 비판할 만큼 알지도 못하고 원저작물을  페이지라도 읽어본 적도 없지만 마르크스의 문제 인식만큼은 아주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살기 힘들면  이유를 규명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이후의 구체적인 이론 구성은 너무 어려워서 공부하지 않은 이상    없고마지막에 프롤레타리아 혁명 운운한 것은 마르크스 본인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자본가들은 똑똑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인데 그들이 구축한 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수수방관 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시스템의 본질이 유지되도록 그들의 체계를 끝없이 수정하는 것은 똑똑한 사람들에 있어서는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Pumped out이란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기억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마르크스의 세계는 돌아갈 곳도 없고 부쳐먹을 밭뙈기도 없어서 도연명의 세계 보다는 훨씬  암울한 세계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이런 생각은 나로 하여금 자유연상에 의해 최근에 개봉했던 인타임이라는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이끌었다.

나는  영화를 보다 말았는데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모티브는 대략 이렇다.

근 미래, 모든 사람들은 25세가 되면 노화가 멈추고, 팔뚝에 새겨진 <카운트 바디 시계>에 1년의 유예 시간을 제공받는다. 이 시간으로 사람들은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시간으로 계산한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 13자리 시계가 0이 되는 순간, 그 즉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들은 몇 세대를 걸쳐 시간을 갖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반면, 가난한 자들은 하루 하루 겨우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노동으로 사거나, 빌리거나 혹은 훔쳐야만 살 수 있다.

여기서 시간이란 결국 자본이고자본이 없는 인간들을 유일한 교환수단인 노동에 의지해서 살게 되지만  노동의 대가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비참한 삶을 살거나 아니면 죽어야 된다는 내용이다.

마르크스의 세계관에 대한 메타포인지도 모르고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스케치인지도 모르고미래의 암울한 세계에 대한 예언인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영화는  재미는 없다는 사실 뿐이다....

정리해보자. 2015 우리의 세계는 도연명의 세계나 마르크스의 세계나 인타임의 세계  어디 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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