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롬 이름과 미래 바로가기
공자 맹자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사실 옛날 사람들이 지금 보다 순진하다고 믿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 문명이 지금 보다 덜 발달한 시기에 사람들이 순진하다고 믿는 것은 지금 시골이라도 내려가 보면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보다 순진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공자 맹자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사실 옛날 사람들이 지금 보다 순진하다고 믿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 문명이 지금 보다 덜 발달한 시기에 사람들이 순진하다고 믿는 것은 지금 시골이라도 내려가 보면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보다 순진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얼마나 순진했냐 하면, 맹자는 성선설이란 것을 주장했다. 사람이 착하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 아무 이유 없이 가서 구해주는 것을 보면 사람이란 본래 선한 존재라는 주장이다.
일반화의 오류, 귀납법의 오류이다. 구해주지 않는 사람도 있다. (또는 있을 수 있다)
요즘은 성선설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지 모른다. 수많은 악한 인간들을 다 보고 나서 인간이 선하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성악설을 주장하자니 여기저기서 간혹 보게 되는 선한 사람들 때문에 예외가 생긴다. 그래서 성무선악설을 주장하며 환경이 사람을 선하게도 악하게도 만든다고 주장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사람의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유전자이다. 태어날 때부터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이 있다. 보다 기술적으로는 사람은 누구나 선악의 성품을 모두 가졌지만 선한 성품과 악한 성품의 비율이 다르다고 보면 된다. 어떤 사람은 선이 10이고 악이 1이라면 어떤 사람은 그 반대의 경우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인간이라는 유전자의 프로그래밍 코드에 선과 악이란 설정 파라미터들이 있는 것과 같은데, 이 파라미터의 설정 값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 설정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 따라 조정될 수도 있고 어쩌면 무작위적으로 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미래에 인간의 유전자 지도의 모든 영역이 해독되면 이 같은 설정값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밝혀낼 수 있을 지 모른다. (어쩌면 이런 유형의 정보는이미 해독되어 정보기관의 비밀 서버에 저장되었거나, 거대 제약회사의 연구 파일로 존재하거나, 세계의 실제 지배자의 노트북에서 검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마이너리티의 주제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악의 설정값이 높은 인간을 미리 발견해 선제적으로 잡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성유선악설인데 서양인이 이런 면에서는 동양인의 사고 보다 덜 순진한 면이 있는 것이다.
무엇을 믿든지 간에 이같이 인간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 인간이 어떤 존재이냐 하는 것은 상당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정보임에 분명하다.
이른바 휴먼 프로파일이란 것인데, 이 용어는 인터넷에 검색해 보아도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가 지금 막 임의로 만들어 자의적으로 쓰고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 어떤 (학술적인) 의미를 부여해 보아도 별 소용은 없다.
프로파일의 어원은 이탈리아어의 가볍게 스케치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따라서 휴먼 프로파일은 인간 특성에 대한 포괄적이고 개괄적인 정보체계 정도로 번역하면 될 것 같다.
물론 지금도 특정분야의 휴먼 프로파일은 여기 저기 넘치게 존재한다. 인간 신체 특성, 인간 심리 특성, 인간 생물특성, 등등…..
예를 들어 똑똑한 사람이라면 이제는 인터넷 검색만으로 전 지구상 인구의 키에 대한 프로파일을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나 기타 기관에 측정한 학생들의 키, 판매되는 옷의 사이즈, 자동차 가전회사 등이 제품제조에 사용하는 인간 신체 치수 데이터 등등…. 찾고자 하면 넘치게 정보를 찾아 이를 통계적으로 가공하면 전세계 인간들의키에 대한 특성을 컴퓨터 화면에 떠있는 가상의 지구본 위에 데이터 시각화 기술로 멋지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빅데이터 가공과 데이터 시각화 기술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단편적인 특정 분야의 휴먼 프로파일은 넘치게 존재하고 있지만, 지금이라면 지구상 어딘가에서 인간에 대한 모든 휴먼 프로파일이 수집되 체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는 아닐까?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기관과 국가는 많을 것이다. 이런 정보는 선용의 소지도 많지만 악용의 소지도 많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사람이 선한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아는 문제는 사실 중요한 문제다. 비단 철학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이다.
사람이 (여행을 가든지 또는 어떤 다른 이유로) 어떤 특정 시공간에 위치하게 될 때,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은 상당한 가치를 가지는 정보일 수 있다. 당신은 멕시코나 이탈리아를 여행가서 그곳의 사람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의 국민 중 몇 퍼센트가 악한사람이고 몇 퍼센트가 선한 사람인가? 물론 알 수는 없지만, 이 정보에 대한추정치에 따라 개인의 행동은 심각하게 달라질 것이고 또 달라져야 한다.
10명 중 1명이 악인인 세상이라면, 10명중 9명이 악인인 세상과는 같은 방법으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무론 이 추정치는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개인에게 주입되는 경향도 있다. 초중고등학교 관제 교육과정은 도덕과목 등을 통해 어린 학생들에게 의도적으로 이 세상이 실제보다 보다 선한 사회라고 세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텔레비전 등의 미디어는 인간의 선한 측면을 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개인은 이들 불완정한 정보를 취합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선악도를 추청하게 되고 그에 따른 생존 프레임워크를 형성해 그것을 기반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선하다고 보는 것이 (진화 생물학의 측면에서 ) 생존에 유리한가 아니면 악하다고 보는 것이 유리한가? 이같은 개체의 선택에 대한 효과는 아주 느리게 나타나겠지만, 결국 나타날 것이다.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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