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의하면 식객이란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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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客식객
①(예전에)세력(勢力) 있는 대가(大家)의 집에 들러붙어 얻어먹고 있으면서 문객(門客) 노릇을 하던 사람 ②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남의 집에 얹혀서 밥만 얻어먹고 지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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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터넷 사전인 바이두 백과에 의하면 식객이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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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 귀족 관료 집에서 의식을 의지하며, 주인을 위해 책략을 세우고 바쁘게 뛰어다니던 사람. 식객의 풍습은 춘추전국시대에 생겨났으며, 손님은 주인에 의존하며, 주인은 손님을 부양할 책임을 졌는데, 이 손님이 많은 경우 삼천여 명에 이르렀다.
식객형의 산명술사도 주인에 의지하며 왕공귀족의 집에 머물거나, 천하를 주유하며 그들을 위해 미래를 위해 앞날을 점치거나 추길피흉 등을 해주었고, 혹자는 "모사", "군사"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식객이란 이름의 영화가 있고 일본에는 동명의 인기만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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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식객이란 한국 영화는 허영만 원작의 식객이란 만화의 영화판을 말하는 것 같은데, 허영만의 식객은 맛의 협객을 뜻하는 것으로 한자만 같을 뿐 원래의 뜻과는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한자 숙어를 오용하는 경우다. (뭔가 잘못 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식객이라면 당연히 사기열전에 나오는 맹상군이 떠오를 것이다. 이 사람은 식객을 많이 두어 활용한 인물로, 계명구도(鷄鳴狗盜), 명불허전(名不虛傳), 식객삼천(食客三千), 교토삼굴(狡兎三窟) 등의 성어의 유래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맹상군 이야기라면 사기열전을 보는 편이 좋겠지만,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찾아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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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15. 맹상군(孟嘗君)
好客喜士(호객희사),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은 문객과 선비를 좋아하여
士歸于薛(사귀우설),
천하의 많은 선비들이 설(薛) 땅으로 모여들었다.
爲齊扞楚魏(위제한초위).
맹상군은 그 선비들의 힘으로 제나라를 위해
초나라와 위나라의 침략을 막아 낼 수 있었다.
作<孟嘗君列傳>第十五(작<맹상군열전>제십오)
이 <맹상군열전>제십오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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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는 심지어 사기열전의 원문이 있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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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정치가로 성(姓)은 전(田), 이름은 문(文)이다. 맹상군(孟嘗君)은 시호(諡號)이며, 설(薛, 지금의 山東省 滕州) 지역에 봉지(封地)를 두고 있었기에 설공(薛公)이라고도 불린다. 조(趙)의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 ? ∼ BC 250), 위(魏)의 신릉군(信陵君) 위무기(魏無忌, ? ∼ BC 244), 초(楚)의 춘신군(春申君) 황헐(黄歇, ? ∼ BC238)과 함께 이른바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로 불린다.
제(齊) 선왕(宣王)의 서제(庶弟)인 정곽군(靖郭君) 전영(田嬰)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5월 5일에 태어난 아이는 그 부모를 해치게 된다는 속설 때문에 장성할 때까지 아버지 몰래 키워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40여 명의 형제가 있었으나 그 총명함을 인정받아 후계자로 인정되어 전영(田嬰)이 죽은 뒤에 설(薛)의 봉지(封地)를 물려받았다.
맹상군은 재산을 털어 천하의 인재를 후하게 대우하여 수천의 식객을 거느렸으며, 현명함으로 이름을 널리 떨쳤다. 그래서 진(秦)의 소왕(昭王)이 그를 초빙하였다. 처음에는 응하지 않았으나, 두 번째 초빙에는 응하여 진나라의 재상(宰相)이 되었다. 하지만 진의 신료들이 그가 제(齊) 나라 사람이므로 진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모함하여 감옥에 갇혔다. 맹상군은 식객의 도움을 받아 진을 탈출하여 제나라로 돌아가 제의 재상이 되었다. 여기에서 ‘계명구도(鷄鳴狗盜)’의 성어(成語)가 비롯되었다.
그러나 맹상군은 제 민왕(湣王)이 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하자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설(薛) 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제 민왕이 송(宋)을 멸망시키고 그를 제거하려고 하자 위(魏) 나라로 가서 재상이 되었다. 그리고 진(秦), 조(趙), 연(燕)과 연합하여 제(齊)를 공격하여 민왕(湣王)을 몰아냈다. 새로 즉위한 제(齊) 양왕(襄王)은 맹상군을 두려워하며 가깝게 지냈으나, 그가 죽은 뒤에 아들들이 자리를 다투자 위(魏)와 연합하여 설(薛) 땅을 정벌하여 맹상군의 후손을 제거하였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설(薛) 지역의 풍속을 경험한 바를 적으면서 “세상에 전하기를 맹상군이 손님을 좋아하고 스스로 즐거워하였다고 하니 그 이름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世之傳孟嘗君好客自喜 名不虛矣)”고 하였다. 여기에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성어가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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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온 책 중에 <운명 앞에 주역을 읽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7장<운명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에는 오이디프스와 맹상군의 이야기를 들어서, 점술과 운명론에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대비하고 있다.
오이디프스 이야기는 괜히 점술(여기서는 아폴로 신전의 신탁)을 믿어서 비극이 된 경우를 말하는데, 이미 이 블로그에서 다룬 바 있다.
맹산군 이야기는 간단히 쓰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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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산군이 어렸을 때 이름이 전문이었고, 아버지는 전영이었다. 전영은 5월5일 태어난 전문이 커서 키가 문 높이에 닿으면 자신을 해칠 것이라는 점술의 예언을 믿고 어린 전문을 죽이라고 한다. 전문은 어머니가 몰래 키우게 되는데, 몇 년 후 전영이 이를 알고 격노하자 어린 전문이 부친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하늘로 부터 명을 받습니까? 장차 문으로부터 명을 받습니까?
하늘로부터 명을 받는다면, 아버지는 아무 것도 근심할 것이 없으며, 문으로부터 명을 받는다면 그 문의 높이를 높여버린다면 누가 그 문에 닿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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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화를 들어 운명론을 믿지 않고 운명을 개척하는 인간의 적극적인 태도를 말한다고 <운명 앞에 주역을 읽다>라는 책의 저자는 쓰고 있다.
오이디프스의 비극적 이야기 보다는, 맹상군의 일화 쪽이 훨씬 듣기 좋은 이야기 인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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