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가의 블로그에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에 대한 포스트가 없을 수 없다.
이는 명(名)을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이름과 실체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명이란, 사물의 실상에 대응하는 이름으로 본다. 이 경우 정명은 사물의 실제와 그 명을 일치시킨다는 뜻으로 동이(同異), 시비(是非), 진위(眞僞)를 분별한다는 논리학의 사실판단에 해당한다.
공자는 이 정명론을 정치적 윤리적 문제로 확장시킨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나라도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할 경우 선생님은 무슨 일부터 하시겠습니까?" "그야 물론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이다." "역시나 선생님은 답답합니다. 하필 그것을 바로잡는다는 말씀이십니까?" "너는 정말 무식하구나. 군자는 자기가 잘 모르는 점에 대해서는 입 다물고 있는 법이다. 만약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주장이 정연하지 못하고, 주장이 정연하지 못하면 政事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정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禮樂이 베풀어지지 못하고, 禮樂이 베풀어지지 못하면 刑罰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하고, 형벌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하면 백성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조차 모르게 된다
子路曰 :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 "必也正名乎!" 子路曰 :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子曰 : "野哉, 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錯手足. 故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已矣."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명부정, 즉언불순, 언불순, 즉사불성] 이라 하겠다.
즉 이름을 잘못 지으면, 명제가 올바르지 못하고, 명제가 올바르지 못하면 세상에 대한 해석이 제대로 될 턱이 없이 없다.
누군가의 주장과 비슷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실재의 논리적 그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언어와 실재 사이에서 성립하는 구조적 동일성을 논리적 형식이라고 한다. 즉 언어가 실재세계를 묘사하는 논리적 그림일 수 있는 이유는 언어와 실재세계가 구조적으로 동일한 형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고, 사실들은 사태의 존립, 즉 발생한 원자사실들의 결합이며, 사태는 대상들의 결합이다. 이와 유사하게 언어는 복합명제의 총체이고, 복합명제는 원자명제들의 논리적 결합이며, 원자명제는 이름들의 결합이다. 이렇게 대상과 이름 사이에, 사태와 원자명제 사이에, 사실과 복합명제 사이에 구조적 동일성이 있고, 그 동일성으로 해서 각각의 쌍의 후자는 전자를 묘사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동일성으로 해서 “실재는 명제와 비교 된다."
동서양의 학자들이 주장한대로 이름은 세상을 해석하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것으로 잘못된 이름을 지으면 좋지 못하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공자나 비트겐슈타인도 오늘날 한국에 살았다면, BRNF를 통해 개명을 하고 싶어했을지 모른다.
공자나 비트겐슈타인도 오늘날 한국에 살았다면, BRNF를 통해 개명을 하고 싶어했을지 모른다.
모두들 BRNF를 통해 좋은 이름을 짓기를 희망해 본다.
바롬 이름과 미래 (baromnf.com)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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