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指 喩指之非指
손가락으로써 손가락을 손가락이 아니라고 주장함은,
不若以非指 喩指之非指也
손가락을 초월하여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깨닫게 하느니만 못하다.
以馬 喩馬之非馬
말(馬)로써 말이 아니라고 주장함은,
不若以非馬 喩馬之非馬也
말을 초월하여 말을 말이 아님을 깨닫게 하느니만 못하다.
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
도(道)의 입장에서 본다면 천지는 손가락이요, 만물은 한 마리의 말(馬)이다.
<장자 제물론>
이전 포스트에서 사주팔자는 사이비 과학이라고 했습니다. 왜 사주 팔자라는 가설 체계는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이 문제를 살펴보려면 우리는 먼저 과학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과학철학은 과학이 무엇인가를 다루는 학문인데, 여기서는 과학에 관한 정의 중 일반인에게도 알려진 것이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 개념과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개념이 아닐까 합니다.
칼 포퍼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과학이론은 기존의 이론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고 발생한 사실을 적절한 방식으로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가설적인 추측이다. 즉 과학이론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발생한 사실을 적절하게 설명하기 위한 가설을 제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가설이 관찰을 통해서 반증된다면 그 가설은 포기되고 다른 가설이 제안되는 과정이 지속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반증을 견디고 살아남은 가설은 과학이론의 지위를 확보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반증을 견디고 살아남은 과학이론은 반증되어 버려진 과거의 이론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참에 가까울 뿐, 그것이 반드시 ‘참’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결국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실수와 착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추측과 반박(conjecture and refutation)이라는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다.
칼 포퍼에 따르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설을 제기하고, 그 가설에 대해 끊임 없이 반증을 제기하여 그 반증에도 불구하고 가설이 무효화 되지 않으면 과학이라는 겁니다.
이 이론을 사주팔자에 적용해 봅시다. 태양(또는 그것에 종속된 환경변수들)이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사주팔자의 가설입니다. 물론 이 기본 가설 아래로 보다 구체적인 수많은 가설 체계들의 있습니다. 그런데 사주가 나빠도 잘 산다든가, 거지사주와 대통령 사주가 같다든가, 쌍둥이 사주인데 운명이 다르다든가 그 외로도 무수한 반증 사례가 있습니다. 이들 반증 사례만으로도 사주의 가설은 반증된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물론 사주는 이런 반증에서 살아남기 위해 추가적인 가설로 설명합니다만, 이 추가적인 가설이란 과학철학이 말하는 소위 덧붙임(ad hoc) 가설일 뿐으로, 결국 이런 덧붙임이 있다는 것은 사이비과학의 전형적인 특징이 되겠습니다.
토마스 쿤은 과학에 대해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사용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패러다임은 방법들의 원천이요, 문제 영역(problem field)이며, 어느 주어진 시대의 어느 성숙한 과학자 사회에 의해 수용된 문제풀이의 표본이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승인은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과학을 재정의 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옛날 문제들은 더러 다른 과학 분야로 이관되거나 또는 완전히 '비과학적'인 것이라 선언된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또는 사소해 보였던 여러 문제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과 더불어 유의미한 과학적 성취의 원형(原型) 바로 그것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문제들이 바뀜에 따라서 단순한 형이상학적 추론, 용어 놀음, 또는 수학적 조작으로부터 참된 과학적 해답을 구별 짓는 기준도 바뀌는 일이 흔하다.
패러다임은 어느 주어진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서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을 가리킨다. 다른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은 그런 집합에서 한 유형의 구성 요소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형이나 또는 예제로서 사용되어, 정상 과학의 나머지 퍼즐에 대한 풀이의 기초로서 명시적 규칙들을 대치할 수 있는 구체적 퍼즐 풀이를 나타낸다.
패러다임이란 세상을 해석하는 시각입니다. 어떤 사람들이나 집단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수용하면 정상과학의 시기에 진입합니다. 그러다가 이 패러다임의 문제 해결 능력이 의심받게 되고, 다른 패러다임이 제시되어 기존 패러다임이 대체하게 되면 기존 패러다임은 비과학적이 된다는 겁니다.
사주팔자도 그것이 제시되던 고대 중국에서는 아마도 지금 우리들이 생각하는 최첨단의 과학과 같은 지위를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사주팔자를 논하는 사람들은 궁정에서 근무하던 천문학자들과 철학자들 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지금 우리가 NASA나 국립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런 눈으로 바라봤을지 모릅니다.
그들이 제시한 사주팔자라는 패러다임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패러다임의 목적 즉 미래를 예측한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명확해지면서 다른 패러다임에 의해 대체된 것입니다. 사주팔자는 비과학이 된 것이죠.
사주팔자가 비과학, 사이비 과학이라 것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무슨 쓸데 없는 논설이냐고 물어 볼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칼 포퍼도 생각해보고 토마스 쿤도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는 사주가 사이비과학 비과학이라고 주장할 뿐 특별히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사주팔자를 믿고 싶으면 믿으면 될 뿐입니다.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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