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8일 화요일

오이디프스의 비극의 점술

바롬 이름과 미래 바로가기   

요즘은 사람들이 그리이스 비극 같은 것은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김성한 작가 류의 막장 드라마가 많이 방영되어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그리이스 비극과 김성한 드라마를 비교하면 김성한 드라마는 오히려 순수한 편이라고 있다. 그리이스 비극 쪽이 훨씬 막장이기 때문이다.

그리이스 3 비극 작가가 있다는데, 트로이의 여인들을 에우리피데스, 메디아를 유리피데스, 그리고 오이디프스와 안티고네를 소포클레스가 그들이다말하자면 사람들은 당시 그리이스에서 김성한 같은 드라마 작가였던 셈이다.

그들의 작품   오이디프스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테베의 오이디프스를 주제로 것이라 한다. 오이디프스 이야기의 대강은 이렇다.

왕비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는 것을 고민하던 라이오스 왕은 도움을 얻고자 신전을 찾아갔다. 그러나 사제는 만일 왕비가 아들을 낳는다면 그 아이가 장차 아버지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불길한 신탁을 전한다.

얼마 뒤 이오카스테는 임신을 하였고 아들을 낳았다. 걱정에 휩싸인 왕은 아들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이의 발목을 가죽 끈으로 묶어 못질을 하고는 양치기들의 우두머리를 시켜 키타이론(Cithaeron) 산에 갖다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마음 약한 양치기는 갓난아이를 죽이지 못하고 코린토스에서 온 다른 양치기들에게 넘겨주었다. 코린토스의 양치기들은 아이를 자신들의 왕인 폴리보스에게 데려갔고, 그는 아이를 양자로 삼는다.

코린토스의 왕자로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델포이 신전을 찾아갔다가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게 된다.

폴리보스를 자신의 친아버지로 알고 있던 오이디푸스는 가혹한 운명을 피하고자 코린토스를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테베로 가는 좁은 길목에서 그는 라이오스 일행과 마주쳤고 누가 먼저 지나갈 것인가를 두고 시비가 붙는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 왕의 시종 하나가 자신의 말을 죽이는 것을 보고 분노해 그들 모두를 죽이고 만다…

물론 비극적인 이야기는 다음으로  계속 되지만 여기까지만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도대체 무슨 일로 인해 비극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바로 때문이다.

이야기 신탁은 오라클이라고 하는데 듣기에 좀 뭔가 있어 보이지만 우리말로 바꾸면 그냥 점이라 하겠다. 쉽게 말해 오이디프스의 아버지 라이오스왕이 점을 보러 점집에 것을 계기로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사주팔자육효점주역점을 생각해도 되고 무속인들의 신점을 떠올려도 되겠다. 점집에 가서 좋은 예언을 받은 것으로 부터 문제는 시작된 것이다.

점을 보지 않아서 나쁜 예언에 정신이 팔리지 않았다면, 라이오스는 아들 오이디프스를 죽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버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결국 이야기의 진행은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갔을 있을 것이며, 비극이 아니라 희극으로 끝을 맺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점의 비극은 한번 나온다. 오이디프스가 델포이 신전에 가서 점을 보지 않았다면 코린토스로 떠나지 않았을 것이며 결국 자기 아버지를 죽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리하면 점집에 가서 점을 것이 오이디프스 가족의 비극을 만들어 내고 것이다. 점만 보지 않았더라도!!!

안다. 여기서 여러분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갖는 안다. 점을 보러 행위 자체가 점에서 예언한 내용을 실현시키고 있는 뭔가 꼬인 느낌!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1930년 8월 12일 출생)는 헝가리계 미국인으로서 금융인이자 투자가, 철학자, 박애주의자이라하며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의 의장이고 진보자유주의운동을 지지한다. (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영국은행의 통화를 공격한 환투기로 거금을 벌어들인 것으로 유명한 일종의 국제 금융 투기꾼이다)

조지소로스는 자기암시이론 또는 재귀효과(reflexivility effect) 가설을 통해 자신의 투자철학을 설명했다.

재귀효과란 간단히 요약하면 '인간은 실제 현실과는 다른 머리 현실을 근거로 판단을 내리는 만큼 자신이 생각하는 현실이 실제 현실에도 영향을 미친다' 것이다.

한편 재귀이론에 따르면 사회과학에서는 자연과학에서와는 달리 관찰자도 생각하는 사람이고, 관찰의 대상도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관찰자는 관찰대상에게 영향을 주고 관찰대상은 반대로 관찰자에게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론을 오이디프스에 적용해 보면 바로 점을 본다는 사실이 관찰에 해당하는 것으로, 관찰이라는 행위 자체를 함으로써 관찰 대상에 영향을 경우라 하겠다.

결국 점이란 자기실현 능력이 있다는 것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점을 보고 나쁜 예언을 믿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어) 인생도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좋은 예언을 믿게 되면 좋은 쪽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이건 점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암시 능력인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며, 말이 씨가 된다고 것이겠다.

점을 보러 가기에 앞서 자신의 밝은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열심히 노력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바롬 이름과 미래 (baromnf.com)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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