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7일 월요일

벤처 캐피탈의 원조 여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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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캐피탈

어느 인터넷의 정의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고도의 기술력과 장래성은 있으나 경영기반이 약해 일반 금융기관으로부터 융자받기 어려운 벤처기업에 무담보 주식투자 형태로 투자하는 기업이나 그러한 기업의 자본을 말한다. 다른 금융기관의 소극적 태도와는 달리 벤처기업의 장래성과 수익성에 주목하여 이에 투융자하는 것으로, 장차 중소기업의 지식집약화의 첨병인 벤처기업이 주식을 상장할 경우자본이익을 얻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쉽게 말해 위험을 감수하고 잘 될 사람을 선택해 자본을 빌려주고 나중에 그 대가를 크게 챙기는 사업의 유형을 말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아는 최초의 벤처 캐피탈리스트는 누구인가?

다행히 사마천의 사기에는 벤처 캐피탈리스트의 원조격이 잘 나와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여불위이다.

타이핑의 수고를 아끼기 위해 인터넷에서 복사하자면, 여불위는 이런 사람이다.

원래 양책(陽翟:河南)의 대상인(大商人)이었다. 그는 국경을 넘나들며 장사를 했으며 이를 통해 거금을 모은 전국시대 대부호였다. 특히 여불위는 수완이 뛰어나고 이재에 밝았다. 여불위가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으로 갔을 때 진나라의 서공자(庶公子)로 볼모로 잡혀 있는 자초(子楚)를 만났다. 자초는 진나라의 소왕(昭王)의 둘째 아들인 안국군(安國君)의 가운데 아들이었다. 여불위에게는 여자가 있었는데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그 여자를 자초에게 주었다. 여불위는 자초가 진나라로 귀국할 수 있게 도움을 제공하였고 후일 자초는 왕위에 올라 장양왕(莊襄王)이 되었다. 그 공로에 의해 여불위는 진나라 승상(丞相)이 되어 문신후(文信侯)에 봉하여졌다. 장양왕이 즉위한지 3년만에 죽자 《사기(史記)》에 여불위의 친자식이라고 기록된 태자 정(政:始皇帝)이 왕위에 올랐으며 그가 진시황제이다.

최고의 상국(相國)이 되어 중부(仲父)라는 칭호로 불리며 중용되었으며 태후(太后:진시황의 모후이자 여불위의 첩)와 밀통관계를 유지하였다. 여불위는 이 관계가 들통날까 두려워 노애라는 사내를 태후에게 보내어 정을 통하게 하였다. 태자 정이 성장하여 이 관계를 눈치채자 노애가 태자를 제거하려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극형을 당하였다. 여불위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 상국에서 파면되어 촉 땅으로 귀양을 가게되었다. 여불위는 점점 압박해오는 진왕 정의 중압감을 못이겨 마침내 자살하였다(BC 235). 전국 말기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여불위가 3000여 명의 빈객들의 학식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원본 위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26030&cid=40942&categoryId=33403>

핵심만 뽑으면, 여불위는 자초라는 사람이 나중에 크게 될(왕이 될) 것을 알고, 자초를 위해 자금을 투자한 후 실제로 자초가 왕이 되자 크게 한 몫을 챙겼다는 이야기인데, 지금의 벤처 캐피탈과 아무 다를 것이 없다!

요즘의 벤처 캐피탈들은 기술도 기술이지만 경영자의 자질 즉 사람을 보고 투자를 한다고 한다.

여불위 시대와 많이 다른가?



바롬 이름과 미래 (baromnf.com)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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