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롬 이름과 미래 바로가기
스타워즈라는 영화가 인기가 있어 만화 애니메이션으로도 시리즈가 제작되었고 그것을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을 얼핏 봤는데 거기에는 이런 자막이 나온다.
"육감을 거스르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다."
육감에는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생명이 그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발휘하는 통각이라고 정의 하고 싶다. 통각이란 생명의 감각활동의 종합을 의미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끼기는 모든 감각활동은 머리 속에서 단지 그것들의 덧셈처럼 기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들은 인간의 머리 속에서 이제껏 저장된 기억과 정련된 사고의 알고리즘을 통해 통합적인 정보로 변환되어 즉각적으로 신체의 모든 부분에 전달되고 이 정보는 생명의 생존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기능한다.
육감은 상당 부분 옳고, 옳지 않더라도 무시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세월호에서는 선원들이 어린 승객들을 대피 구조시키기는 커녕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방송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자신들의 감각을 억제하고 부모나 사회의 명령에 순응할 것을 강제 받고 그에 따라 교육된다. 부모나 사회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감각과 자율의지가 동 하는 대로 행동하면 제제 받고 처벌 받는다.
그런 식으로 십수 년의 교육을 거친 아이들에게 육감은 억제되고 무시된다. 그 결과 자신의 생명을 촉진하는 방향성을 가진 자율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나 부모가 원하는 로봇과 같아지고 자기의 생명 하나도 건사하기 힘에 겨워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방송을 들었을 때, 그들의 머리 속에는 왜 육감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왜 뛰쳐나가고 싶지 않았겠는가?
부모와 선생님과 사회에 순종하라고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자신의 육감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겠는가?
이 거대한 비극을 보면서, 종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운 이 비극의 원인들이 도대체 무엇들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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